허언증

기묘한 이야기 - 빙의 된 노파

아Q정전 2023. 8. 15. 00:42


 

음악을 꼭 특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아래의 이야기는 본인이 어제 겪은 실화임을 맹세합니다.

 

 

 

 

 

 

 

 

어느 비가 내리는 음산한 저녁.

나는 여느 때 처럼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따라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에 젖어 번들대는 아스팔트가 네온싸인의 빛을 반사하여 파충류의 가죽처럼 빛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가져갔다. 한 때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비웃던 자들이 이제 그보다 더 작은 핸드폰 화면에 스스로 기어 들어가 자신의 바보짓을 전시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양가적 감정에서 오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비가 내리는 오래된 거리의 대로변에서 홀로 웃고 있었다.

 

그 때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한 노파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기괴한 목소리와 달리 할머니의 미소는 티없기 짝이 없었다. 온 몸의 소름이 살짝 잦아들자 아까 들려온 할머니의 목소리가 무엇과 비슷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신점을 보는 무당에게 아기 혼령이 들어왔을 때 내는 목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이어폰을 빼며 할머니를 망연히 바라봤다. 할머니는 기괴한 목소리로 다시금 내가 말을 걸어왔다.

 

"저는 키키예요."

 

노파의 성대가 가녀린 목소리를 내려다 보니 치찰음이 함께 터져 나왔다.  나는 가능한 한 냉정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 맥락을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그리고 현실에 맞닿은 영역 안에서 이해하려 노력해 보았다.

키키. 할머니의 이름이 키키라는 것인가, 혹은 할머니의 몸에 빙의된 어떤 정체모를 원혼의 이름이 키키라는 것인가. 나는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이어폰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 예...."

 

 

나는 잠시 그녀의 눈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일말의 악의(惡意)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키키'라고 하는 그 어떤 존재임을 완전하게 믿지 않고서야 저런 선량한 눈빛으로 내게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완결성이 나를 더욱 두렵게 하였다. 나와 눈을 맞춘 채 그 티없는 눈빛으로 미소 짓던 노파는 잠시 후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며 나를 지나쳐 갔다. 번들대는 아스팔트 위를 걷는 노파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뒷골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떠나가는 노파를 바라보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작고 하얀 형상"그녀의 곁을 따르고 있었다. 나는 공포심을 간신히 억누르며 그 형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정체를 깨달은 나는 온 몸을 휘감아 오는 경악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녀의 곁의 그 형상의 정체는, 그 정체는 바로.

 

 

 

 

 

 

 

 

 

 

 

 

 

스피츠 강아지였다.

핸드폰을 고개숙여 바라보는 내가 짓는 미소를 자신의 강아지를 보고 미소 지은 것으로 착각한 할머니는 내게 키키로 빙의하여 인사를 한 것이다. 나는 노파가 느꼈을 무안함에 온 몸이 떨려왔다. 이제는 내게 그 노파가 빙의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바로 달려가서 키키를 안아들고 아이고 정말 귀여운 강아지네요 키키는,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리 하지 못했다. 다시 한 뼘 바보상자로 고개를 숙였다. 2023년 오늘은 그런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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